모로코여행 - 1

이 기록은 전혀 계획에 없었지만, 여행첫날의 어떤 계기로 인해 문득 충동적으로 작성했다.

준비

회사에 입사하고 6개월만에 처음으로 휴가를 냈다. 그것도 매우길게. 안식휴가등을 제외하면 보름이상의 장기여행은 일반적(우리나라 대다수의)인 회사에 다니는 이상 힘들다. 그런데 운좋게도 이런쪽의 문화가 잘 정착한곳에서 직장생활을 하게되었다. 그래서 사실 이번 여행의 계기는 정말 여행이 가고싶어서라기보단,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을까 라는게 더 컸다. 그렇게 지인들이 추천한 모로코를 출발지로 정하고, 그 외 목표도시만을 대충 정한채로 무작정 20일간의 여행을 출발했다.

출발

9월 23일 00시 45분 비행기. 그런데 체크인을 할때 보니 30분정도 시간이 당겨져있었다. 밤비행기는 처음이어서 자주있는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밤에 출발한다는 이유로 출발시간이 당겨졌다고한다. 늦게 출발하는건 그렇다 쳐도 정해진 시간보다 빨리 출발하는건 그래도 되나 싶다. 어쨌거나 나는 충분히 일찍 도착했기때문에 무사히 보딩을 마쳤다.

인천에서 도하(카타르)까지 9시간 50분, 중간환승 4시간, 도하에서 카사블랑카까지 7시간 50분. 17시간 40분동안 하늘을 날았다. 비행기에서 세끼를 먹었고, 내릴 때 발이 부어서 신발을 신는게 뻑뻑했다.

도착

카사블랑카에 도착해서 처음한 일은 환전이다. 나는 인천공항에서 환전해온 500유로중 200유로를 환전하기 위해 환전소에 갔다. 그런데 어찌된일인지 봉투속에 80유로밖에 없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분명 500유로를 환전했는데 80유로밖에 없었다. 환전한 돈봉투를 가방 두번째 지퍼속에 넣어놨던것이 문제였다. 언제 소매치기를 당했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인데, 입국심사를 위해 줄서는 곳이 아니었나 짐작하고 있다. 자만했던것이다. "저번 여행에서 아무일도 안생겼으니까 이번에도 그렇겠지. 귀찮으니까 적당히 넣자" 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할때 즈음이 제일 위험한것같다. 이것은 비단 여행에만 적용되는것은 아닐것이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소매치기를 당했다. 그리고 왠지모르게 나는 이번여행을 기록해놔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현금이 없는 나는 어쩔 수 없이 카드로 환전을 해야했다. 그런데 어찌된일인지 환전소 직원이 아무리 시도해봐도 긁히질 않는단다. 내가 가지고있던 두번째, 세번째카드까지 모두 알수없는 이유로 긁히질않았다. 이때 머릿속에 스친건 출국당일 점심때 갔던 중국집에서 내 왼쪽 바지주머니에 뜨거운 짬뽕을 쏟은 일이었다. 카드를 꺼내보니 붉은색 자국이 약간 남아있었다. "카드가 이때 고장난거구나"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리기까진 오랜시간이 걸리지않았다.

환전소에선 은행에 전화를 해보라고 했다. 아니 유심이 없는데 은행에 전화를 어떻게하나... 심지어 한국시간으로 일요일 아침 9시인데...! 이때 약간 멘붕이 왔지만 빠르게 다음 할일을 생각했다. 그나마 소매치기가 다행히 80유로를 남겨주어서 유심과 데이터를 구매할 수 있었다. 그 후 세운 현실적인 플랜은 두가지였다.

  1. 지나가는 한국인(거의없긴하지만)에게 다짜고짜 말을걸어 환전을 부탁한다.
  2. 최후의방법, 모로코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이 플랜을 위해 온갖 포탈에서 여러가지를 찾아보았다. 그러던중 우연히 어떤 블로그의 여행후기에 외국에서 카드의 핀번호를 입력할때 뒤에 00을 붙이라는 글을 보고 혹시? 라는 생각으로 시도해봤다.

그런데 정상적으로 인출이됐다!?

기계가 현금을 인출할 수 없는 이유를 표시해주지 않았을뿐만아니라, 이전 다른나라 여행때도 모든 카드의 핀번호는 네자리만 입력하면 정상사용이 가능했기때문에 여섯자리가 기본일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고, 중국집의 사건과 겹쳐서 혼자 틀린결론에 도달해버린것이다. 이 또한 내 경험이 이곳에서도 적용될것이라는 자만이었던것 같다. 이렇게 몇번의 출금테스트를 거쳐 150유로가량을 모로코디르함으로 환전하고 카사블랑카에서 마라케시로 가는 여정에 올랐다.

인천에서 도하(카타르)까지 9시간 50분, 중간환승 4시간, 도하에서 카사블랑카까지 7시간 50분, 카사블랑카에서 카사보야져역까지 40분, 대기 1시간, 카사보야져역에서 마라케시까지 3시간 50분. 총 이동시간 26시간 10분으로 여행 첫날을 마무리했다. 여행의 시작을 싱글룸으로 결정한건 이번여행 최고의 선택중 하나가 아니었나싶다.

마라케시

전날 피곤한것치곤 일찍 잠에서 깼다. 그리고 대략 오늘의 계획을 세웠다. 나는 여행지에서 전통시장/슈퍼마켓/대형마트를 빼먹지않고 방문한다. 관광객으로 북적대는 명소들에 비해 그 여행지의 진짜 냄새가 느껴지는 것 같고 그곳을 요약해서 보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마라케시에서 시장따위가 있는지 찾아보니, 수크라고 불리는 매우매우 거대한 시장이 있었다. 사실상 마라케시에서 볼건 이것밖에 없는듯 했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할 정도의 규모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아프리카대륙에서 가장 큰 시장이라고한다.

수크를 보기위해 일찍이 밖으로 나갔다. 어두울 때 도착해서 잘 보지못한 모로코의 모습은 이른 아침의 맑은 하늘덕분에 더욱 흐드러졌다.

옷차림

9월말의 작열하는 태양은 이곳이 아프리카대륙임을 상기시켜주었다. 특히 정오즈음에는 그늘조차 찾기힘들어서 그냥 숙소에 있는게 나은것 같았다. 길가에 개들도 더운지 널부러져있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다들 아무렇지도 않아보인다. 심지어 어떤 여성들은 눈만보이는 히잡을 쓰고 엄청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떤 현지 여성분이 아이폰과 이어폰, 나이키운동화와 청바지차림에 히잡을쓰고 있는 옷차림이 흥미로웠다.

널부러진 개들

메디나

이슬람국가에서 신시가지와 비교되는 구시가지를 메디나라고 부르는것같다. 마라케시에서 구시가지는 거의 전체가 수크이다. 한번 들어가면 도저히 길을 찾을 수 없을정도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물건을 팔고있다.

하지만 규모보다 더 기억에 남는건 호객행위가 아주 기승을 부린다는것이다. 아직까지 한국인에게 인기있는 여행지가 아니라그런지 "니하오, 차이니즈, 곤니찌와, 죠또" 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기분이 나쁘지는않았다. 나 또한 모로코사람과 인도사람을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여행지에선 어느정도 들려왔던 "안녕하세요"가 없으니 내심 서운한건 왜인지 모르겠다. 하여튼 내가 가봤던 재래시장중 여기만큼 적극적인곳은 없었다. 좀 더 자세히 보고싶었던 신기한 물건들을 뒤로하고 빠르게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너무많은 호객 + 구걸을 해오니 나중에는 나에게 말을 걸어온 현지인들을 들어보지도않고 무시해버렸다. 어쩌면 이 사람은 순수한 호기심으로 동양인 여행자에게 말을 붙인것일 수 있는데도 말이다. 기대했던 재래시장의 정겨움보다, 귀찮음과 두려움이 더욱 컸다.

그런데 오히려 랜드마크근처 큰 식당에서 약간의 따뜻함을 찾을 수 있었다. 신시가지 아울렛 앞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훤칠한 사내는 모로코가 처음인 내게 전통요리를 먹는 방법과 들어간 재료를 서툰영어로 몇번이나 설명해주었다. 절반가량은 바닥에 흘려버리는 민트티 디캔딩은 귀여웠고, 본인이 잔돈을 안가져왔으니 조금만 기다려서 반드시 거스름돈을 받아가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은 여느 관광지의 그것과는 사뭇달랐다.

그리고 나는 이날 시차적응의 영향인지 저녁 9시에 잠에 들어서 새벽 3시에 눈을 떴다.

메디나

이동

2.9km. 이날 걸은 걸음의 거리이다.(어제는 18km를 걸었다) 마라케시에서 8:30AM에 메르주가행 버스를 탔다. 그리고 몇번의 휴게를 거쳐 버스에서 내린시간은 9:00 PM. 12시간 30분동안 650km를 달렸다. 심지어 첫 네시간정도는 포장도로라고 볼수없어 멀미가 없을 수 없는, 이리휙 저리휙의 산길이었다. 내 생에 가장 길게 버스를 타본것같다. 모로코는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이고 그 중간중간에 마을이 형성되어있는식이라, 네다섯시간정도의 이동은 긴 거리가 아니다. 어제 뉴스에서 본 부산에서 서울까지의 귀경길이 5시간 걸린다는 기사가 약간은 다르게 느껴졌다.

피곤한 와중에 버스옆자리에 앉은 무뚝뚝한 아저씨가 내민 아몬드한줌은 꿀맛이었다. 나도 보답으로 하리보 젤리 한움큼을 건냈다. 그랬더니 또 어느샌가 휴게소에서 호올스캔디를 사와서 주셨다. 먹으니 코가 시원해졌고 피로가 약간 가시는것 같았다.

모하네

메르주가와 2km정도 떨어진 하실라비드에 도착했다. 모하네집은 Moha의 가족들이 살면서 숙박업을 같이 하고있어서 모하네라고 부른다.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라기보단 하숙을 얻은느낌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선택하는 알리네는 일부러 선택하지 않았다. 덕분에 묵게된 이 방에는, 에어컨은 커녕 있는거라곤 약간이라도 뒤척이면 떨어질것같은 좁은폭의 침대하나뿐이다. 와이파이는 있을리 만무하고 심지어 숙소밖으로 나가야 3G데이터가 미약하게 잡힌다. (나중에 알았지만 와이파이가 있냐고 물어보면 본인 휴대폰으로 핫스팟을켜준다! 물론 핫스팟인지라 다른방에 있으면 사용불가) 그래서 반강제로 휴대폰없는 생활을 체험해야한다. 그리고 화장실엔 좌변기가 없고, 볼일을 보고나서 물을 끼얹어야한다!

너무나도 불편했다. 그리고 재미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묵어본 숙소중에 최고로 불편했고, 말그대로 "로컬"에 가장 가까웠다. 그들이 사용하는 그릇에 식사를 준비해주었다. 그리고 거실로 사용하는 공간에서 저녁을 먹었다. "불편"은 내 기준일 뿐이었다. 그들은 충분히 행복해보였다.

가족중 세살배기 꼬마가 내가 가져온 화려한무늬의 캐리어가 신기한지 이리저리 만져보다가 언니에게 호통을들었다. 그 어린친구에게 적극적으로 말을거는게 약간 무서워서 쳐다만 보고있던 내가 문득 미안했다. 그래도 나는 약간의 용기를내어 미소지어보였다.

12시간 30분동안 버스를 타고 온건 단순히 먼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삶을 좀더 가까이서 보기위함인듯했다.

모하네의 일출

모하네의 일출

모로코의 빨래 모로코의 빨래는 한시간정도면 바싹 마른다